
한자로 소금 염(鹽)자를 파자하면 신하(臣) 소금물 염, 그릇을 뜻하는 글자로 국가가 소금을 지배했음을 알 수 있다. “토정이 제시한 국부 증진 책과 민생안정책”같은 사상은 시대를 뛰어넘는 진보적 인 것이었다. 수용하면서 부강한 조선을 위해 적극적인 사회 경제 정책을 제시하고 실천했던 실 학자였다. 이지함의 사회경제정책은 그가 올린 상소문 등에 피력되어 있다. 농업과 상업의 상호보충관계를 강조했는가 하면 광산개발과 해외 통상을 주장하는 국민들이 잘 살기위해서는 먼저 나라의 부를 키워야 한다는 이른 바 ‘국부론’을 주장했다. 그런데 이지함은 ‘국보론’ 을 제창한 아담스미스보다 200년이나 앞서 그와 같은 중을 한 천재로써 정초에 가정에서 운수를 보던 토정비결을 만든 장본이시다.
“굶주린 백성을 구하는데 있어서는 왕실의 재산도 아깝지 않은 법이온데, 어찌하여 산과 들에 헛되이 버려져 있는 은(銀)은 무엇이 아까워서 주조를 못하게 하며, 옥(玉)은 무엇이 아까워서 채굴하지 못하게 하십니까? 물속에서 넘쳐나는 물고기를 무엇이 아까워서 못 잡게 하며, 염전에 넘치는 바닷물을 구워 소금으로 만드는 일을 무엇이 아까워서 못하게 한단 말입니까? 설령 그것이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못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고기를 잡고 소금을 구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소금에 대해서는 서해도 풍천 부 근처에 섬도 있습니다. 이 섬들은 국가나 개인에게 소속된 적이 없다고 하니 포천 현에 임시로 빌려 주시면 2〜3년 안에 몇 천섬의 곡식을 장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정은 그 일을 허락 험으로써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이익을 거두어들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만 된다면 한 섬의 곡식도 낭비하지 않고 한사람도 번거롭게 하지 않으면서 만인을 살릴 수 있습니다. -포천에 부임했을 때 올린 상소 이다.
이지함은 왕에게 올린 상소에서 육지와 바다 자원을 개발해 백성들의 생활을 돕고자 주장하면서 구체적인 방안까지 제시하나 조정에서 받아들여질리 없었다. 이지함은 스스로 벼슬을 버리고 귀향했다. 그러나 이지함은 1578년(선조11년)에 다시 아산 현감으로 등용 되었다. 아산에서 그는 현대적 개념의 빈민구제기관인 “걸인 청”을 설립했다. 걸인 청은 걸인들에게 단지 먹고 잘 것을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교육시켰다. 이지함은 걸인 청을 직접관리 감독하며 데리고 나가 시장에서 장사하는 방법을 가르치기도 했다. 봉건사회에서 근대적인 재활 기관을 만든 것이다. 이지함은 아산현감 부임 3개월 만에 돌연 역질 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참으로 아까운 인재였다.
우리나라는 1962년에야 비로소 소금 전매업이 폐지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민간인이 소금을 만들어 자유로이 팔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50년 남짓하다.
<<신 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인천의 소금 산지는 원래 서구와 계양구 해안일대였다. 여기서 생산되는 소금은 곡물보다 얻기 어려운 귀한 것이어서 인천경제에 큰 몫을 하였다. 인천에431군데 염전이 있었는데 그 중 큰 염전이 299곳이라고 <<인천향사>>에 기록 되었다.
1933년에 이르러 주안, 남동, 소래 세 염전은 전국 생산량의 절반인 15만 톤을 생산했다. 구 뒤 일제는 대규모 천일염 염전을 서해안 곳곳에 만들어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난들 던 전통 파 염을 몰아낸다. 일제 강점기 동안 천일염전은 평안도, 서해도, 경기도 등 서해안에 집중적으로 개설되어 천일염을 생산했으며 일본정부가 그 소유권을 장악했다. 급기야 전쟁에 쓸 화약 군수 산업의 원재료를 공급하기 위해 1942년 소금생산을 전매제로 바꾸게 된다. 하지만 충청도 및 전라도는 우리나라 전통소금 생산방식 자염방식이 강해서 값싼 호렴도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호렴은 알이 굵고 정제되지 않은 천일염을 말한다. 그 만큼 전라도 지역은 우리 고대 소금인 자연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 까지 천일염전은 모두 인천의 북쪽 지역에만 축조되었는데 이는 한국전쟁이 후 남한에 소금 기근 현상을 초래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 1961년에 전매법이 폐지되면서 1962년 국유 염전을 모두 민영화했다. 세상이 만이 변해 소금을 얻기 위한 전쟁도 불사했었다. 오늘날 우리는 그런 을 귀한 줄 모르는 별천지에서 복된 삶을 누리고 있다. 우리인체에 불과분의 관계인 보석과도 같이 좋은 소금얘기를 애독자 여러분께 들려 드리며 새해를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