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기능대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해 있는 업체인 오부자공방을 찾아서…(업체탐방)
작성일: 2005-03-28
외래문물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요즘에도 오직 우리것을 묵묵히 지키며 전통문화 지킴이로 외길 인생을 걸어가고 있는 오부자공방(대표 이경동)을 찾아 업체 전반에 걸친 활동사항을 들어봤다.
오부자공방은 거창정장리 농공단지내에 위치해 있고 사물악기(징, 꽹과리)와 생활유기등 우리 고유의 전통의 맥을 이어가며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이 업체의 역사는 창업주인 이용구(70. 무형문화재 징匠)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근 함양군 서상면에서 태어난 그는 당시 이 마을이 "안의 징"으로 전국에서 명성을 얻은 곳인 만큼 운명처럼 징과 마주치게 됐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소학교를 중퇴한 그는 아버지마저 일찍 여의고 먹고 살기가 막막하던 터라 당시 최고의 징 제작기술 보유자였던 같은 마을 오덕수씨(89년작고) 밑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징 만드는 기술을 곁눈질로 터득하기 시작했고 “우~웅 하는 징소리의 울림소리가 온몸을 휘감고 돌때면 잠이 오지 않을 지경"이었다고 당시를 술회하고 갖은 고생을 다 하면서도 징만 잡으면 신이났다고 회고했다.
이후 17세 되던 해 본격적인 풀무질꾼을 시작으로 선메꾼, 앞메꾼을 거쳐 26세때 징 작업의 최고 기술자인 대정이가 되었다.
그러나 70년대 들어 전국을 메아리쳤던 새마을 운동으로 도시화 산업화가 급속도로 가속화되면서 징 사업도 점차 사양길로 접어들기 시작할 무렵 고민 끝에 잠시 이 일을 내팽개 치고 서울로 올라가 10여년의 세월을 막노동을 하며 겨우 연명하며 살아가던 동안 예전의 귓전에 울리던 징소리는 늘 맴돌았다. 많은 고민끝에 지난 86년 다시 거창읍 학리 가막산 자락으로 내려와 징과 다시 인연을 맺고 다시는 징을 놓지 않으리라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이 옹의 이런 결실이 열매를 맺어 지난 88년 이래 전승공예대전에서 3회 연속 수상을 한 후 지난 93년 경남도 무형문화재 제14호 “징장"으로 지정됐다. 이어 지난 91년에는 이어령 당시 문화부장관의 특별지시로 “한국표준징소리찾기사업"이 추진되면서 이용구 징장이 만든 “방짜징"이 우리나라 최우수 징으로 선정돼 국립 국악원에 소장되기도 했다.
이렇듯 고집스럽게 우리의 것을 지키며 외길 인생을 걸어오고 있는 오부자공방은 지금으로부터 8년전인 지난 97년 정장리 논공단지로 이사를 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 20여명 정도의 직원이 일을 하고 있고 각자 자신의 일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으며 최근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고 있는 주 5일제 근무를 이미 4년전부터 실시해 오고 있어 근무환경 여건 조성에도 앞장서고 있다.
전통문화제품은 수요가 많질 않아 현재로선 생산량이 비교적 한정되어 있는 상태지만 꾸준히 판로를 개척해 나아간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이 공방은 창업자 이용구옹을 비롯 넷째아들 경동씨와 며느리 김순영씨가 함께 운영하고 있고 첫째아들 점식씨와 셋째아들 성술씨도 같은 단지내에서 북과 장구를 전문적으로 제작하며 전국에 보급하고 있는 등 가족 모두가 같은 일을 하고 있다.
또한 이 업체에서 주로 생산하고 있는 방짜유기의 주재료는 78%의 구리와 22%의 주석을 합금한 후 10여개의 정밀한 공정을 거쳐 제품이 완성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징의 소리를 잡는 풋(초)울음 잡기와 일정한 간격, 정확한 다듬질로 징소리를 만들어 내는 과정과 여러 가지의 공정을 거친 징은 다시 재울음 잡기를 해야 비로소 징이 완성된다.
오부자 공방의 향후계획으로작업장 옆 전통가옥에 옛 모습 그대로의 유기제작과정을 재현할 수 있는 체험 학습관을 지어 도시민들과 학생들이 직접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게 꿈이다.
지난 해 관내의 모 초등학교 학생들이 체험실습을 다녀 갔지만 체험공간이 협소해 문제점이 있었다고 밝히고 앞으로 국제연극제 등을 통해 외부사람들이 우리문화를 직접체험 할 수 있는 계기 마련의 장이 될 수 있고 이를 관광 상품화하여 징, 꽹과리, 생활유기 등을 외국으로 수출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군에서도 문화사업 운운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실질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 것은 별로 없는 상태로 거창삼베일소리와 함께 관광상품화해 나아간다면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와함께 얼마전 제주도 서귀포의 한 팬션에 상당량의 생활유기를 공급해 좋은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렇듯 쇠덩이에 황소울음 담기 40년 외길 인생을 걷고 있는 오부자공방은 20여명의 직원들과 한 마음으로 목적지까지 가고 있고 점차적으로 영리를 공평하게 분배해 나갈 계획이며 사업이 일정한 궤도에 오르면 불우이웃돕기 등을 통해 재산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점차적으로 변화해 가는 오부자공방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이 씨는 현재 사물악기와 생활유기등을 국악기 가게와 대학의 동아리팀, 명품취급업소, 사찰 등에 공급해 오고 있지만 시장은 무한대이므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시장개척에 적극대처해 나아갈 것이라고 밝히는 이들의 모습에서 지역경제 활성화의 희망의 돌파구는 열려나갈 것으로 확신하게 된다.
이형진 기자 hyeongj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