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원형문화 소도蘇塗와 경당扃堂

작성일: 2021-05-20

지구촌 문화시대를 증명이나 하듯이 동방의 한국을 알려고 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1억 명이 넘어서고 있다.

그들은 인터넷을 통하여 “나는 한국을 좋아한다. 방탄소년단을 좋아한다. 왜 저런 옷을 입는가? 노래가사는 무슨 뜻인가? 하고 실시간으로 묻는다.”

그리고 더 관심이 생기면 ‘한국인의 뿌리와 문화정신은 무엇이며, 그들은 어디에서 왔는가?’를 묻고, 스스로 책을 찾아 공부하기도 한다.

그런데 외국인의 그런 물음에 많은 사람들은 정확하게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역사의 원형DNA를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의 원형문화 코드, 대한의 찬란한 문화정신의 원동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삼국유사>(고조선)에 담긴 환국, 배달, 단군조선시대의 문화원형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러한 원형 중에서 삼성조시대의 역사적 심장부라 할 동방의 영성문화의 메카라 할 수 있는 소도와 경당을 살펴보자.

9천년 한민족의 역사 문화의 중심터전은 한마디로 말해서 소도蘇塗와 경단扃堂이다.

우리고유역사서와 아울러 중국 역사서를 통해 살펴보자.


“소도가 건립된 곳에는 모두 계율을 두었는데, 충효신용인忠孝信勇仁이라는 오상五常의 도가 그것이다. 소도 옆에는 반드시 경당을 세워 미혼자제로 하여금 사물事物을 익히게 하였는데 대게 독서, 활쏘기, 말달리기, 예절, 가악, 검박(검술을 겸함)으로 육예의 종류였다.”

<태백일사>(삼신오제본기)


“민간에서는 서적을 사랑하여 가난해서 천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 까지 각기 네거리에 큰집을 지어 이를 경당扃堂이라 부른다.

자제들이 혼인하기 전에 여기서 주야로 글을 읽고, 활쏘기를 익힌다.”

<구당서>


“사람들이 글을 좋아해서 가난하여 천한 일에 종사하는 집에 이르기 까지 서로 삼가고 힘써서, 길가에 모두 엄옥嚴屋을 지어 경당이라 부른다.

자제들이 결혼 전에 그곳에 모여 경전을 암송하고 활쏘기를 익힌다.”

<신당서>


우리는 중국기록인 <구당서>와<신당서>와 우리기록인 <태백일사>에서 동시에 소도, 경당문화를 확인 할 수 있었다.

단군조선을 계승한 북부여와 북부여를 계승한 고구려까지도 경당이 온전히 계승되었고, 경당문화는 온전히 보전 되었다.

경당은 동방 한민족교육의 터전이자 심장으로 존재하였던 것이다.

소도 경당문화는 단군 조 11세 도해단군 때 배달국의 환웅천황을 모신 웅상문화의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태백일사>(삼신오제본기)를 보면 ‘소도지측 필립경당’이라 했다.

소도 옆에는 반드시 경당을 세웠다고 하였다.

소도는 소생할 소蘇, 진흙 도塗 자로 끊임없이 소생하는 생명의 터전,

신성한 생명이 솟구치는 성스러운 곳이다.

이 소도는 환국, 배달, 조선의 문화 창조 중심지였다.

경당의 ‘경扃’자는 원래 ‘문빗장 경’자다.

경扃이라는 것은 공경한다는 경敬자와도 통하므로 경당은 ‘공경을 배우는 집’ ‘마음을 환하게 밝히는 집’이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