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두 정여창 선생 서거 500주년 기념 추모제 열려…
작성일: 2004-06-28
한국 儒學史를 빛낸 많은 학자들중 조선조 五賢의 한분이신 문헌공 일두 정여창 선생의 서거 500주년 기념 추모제가 지난 6·22(화) 오전 8시 성균관 유도회원과 종친, 대외인사 등 약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함양 지곡면 소재 남계서원을 비롯 함양읍 소재 상림공원내 다별당에서 있었다.
이번 행사는 일두 정여창 선생의 서거 500주년을 맞이하여 그분의 높은 사상과 학문, 도학의 실천등을 이어받고 그 업적을 기리며 추모하기 위한 행사로 선생의 뜻과 조선조 유학문화를 현대에 맞게 승화 발전시켜 나가는 일에 동참하기 위한 행사였다.
또한 이번 행사는 지난 5월5일 어린이날 기념 홍보행사를 시작으로 일두 정여창 선생 알리기 작품공모전과 가묘제, 헌작례, 시가행진, 숭모제향, 헌다례 및 기념식이 있었고 최근덕 성균관장의 주제 발표와 함께 제막식이 있었다.
한편 일두 정여창 선생은 號는 일두, 본관은 河東으로 조선 세종 32년(1450) 5월5일 함양군 지곡면 개평에서 정육을과 경주 최씨 사이에 3남1녀중 장남으로 태어나 당시 17세(세조13)에 이 시애의 난을 진압하다 아버지를 여의고 전쟁터인 함경도로 달려가 시신을 찾아 운장하여 묘소를 마련하고 시묘생활을 했고 22세 (성종2)때 경기도 이천에서 이관의 선생의 문하에서 성리학의 기초를 확립한후 24세(성종 4)에 자신의 동생과 지리산으로 들어가 3년동안 수학했다.
이후 27세(성종7)에 상경하여 김종직 문하에서 사서를 연구하고 한휜당 김굉필과 유의를 강설하고 31세(성종11)에 성균관에 유학하였으며 당시 같이 수학한 14인중 일두는 도학에 전념하였다.
이어 33세(성종12)에 하동 악양정으로 내려가 학문을 연구한 후 34세(성종14)에 어머니의 권유로 사마시에 2등으로 급제하고 성균관에 유학하여 성리학의 대가로 추앙 받으며 이후 김일손, 강혼, 김종직등과 자주만나 강론하였다.
36세(성종17)에 모친상을 당해 3년상을 치루고 39세(성종 20)에 가족을 데리고 악양으로 이거하여 학문을 연구하였으며 40세(성조21)에 김일손과 16일 동안 두류산을 등정하여 대과준비를 위해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당시 성종은 그의 학행을 알고 소격서참봉을 제수하였고 문과급제후에는 예문관검열에 보직되었다.
이형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