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무궁화 꽃에 대하여
작성일: 2010-08-05
우리나라와 민족의 오랜 전통을 고양하는 우리 역사 1만년의연원은 고조선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나라꽃이나 나라나무 등은 그 나라의 국민성을 상징하거나 역사적인 관련성이 있어야하고 기본적으로 그 나라 자생종으로 고유성을 가진 품종으로 국가에서 법으로 정하거나 국민의 뜻에 따라 國花(국화), 곧 나라꽃으로 정하게 된다.
우리나라꽃 무궁화는 우리민족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어 오는 동안 자연적으로 나라꽃이 된 대표적인 예다. 태극기나 애국가와 달리우리나라꽃무궁화는 법률이나 제도로 정한 바는 없지만, 예로부터 우리민족의 가슴에 배달겨레의 꽃으로 자리 잡아왔다.
구한말에는 국학운동에 의해 나라꽃으로 부각돼 한반도를 지칭해 중국에서는槿域(근역)이라 했고, 897년 신라 효공왕 때 최치원이 작성해 당나라 광종에게 보낸 국서에서는 우리나라를 槿花鄕(근화향)이라 불렀는데 이는 ‘무궁화나라’라는 뜻이다. 동양최고의 지리서인 『山海經(산해경)』에도 薰華草(훈화초) 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 ‘훈화초’가 바로 무궁화를 일 컷 는 것으로 ‘군자국에는 무궁화가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진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 밖에도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도 古今注에서 인용한 ‘君子國 地方千里 多木槿花’라는 대목이 있고, 『동경잡기』, 『해동역사』 등 여러 문헌에서 우리나라를 무궁화의 나라로 지칭하고 있다.
1983년에는 남궁억이 윤치호와 의논해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잠정적으로 정한 것이 그로부터 애국가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란 가사를 넣게 되고 나라꽃으로 굳어진 것 같다는 설도 있다.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가 대한독립선언서 상단에 태극기와 무궁화 표식을 도안하는 등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지사들에 의해 민족혼을 일깨우고 애국정신을 고취하는 표상으로 삼았다.
무궁화는 아욱과 식물로 작은 키 나무로 2~3미터의 높이에 팔목정도의 굵기로 자란다. 꽃잎은 크기가 4~10센티미터 이며 달걀모양으로 깊게 세 갈래로 갈라져 있다. 보통5장으로 되어 있으나 다수의 꽃잎을 가진 품종도 있다. 7월에서 9월에 피는데 새벽에 꽃이 피었다가, 오후에 오므라들기 시작하고, 해질 무렵에 꽃이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전 세계에 250여 종류의 다양한 무궁화가 있으나 그것을 다 우리나 꽃이라 하지 않는다. 1990년 전국 화훼학계 교수들이 중심이 된 “한국무궁화 연구회”를 발족해 연구와 보급을 했다. 1991년 산림청은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6단계로 분류하여 그중 2단계22품종을 선정 보급하였다. “백 단 심계와 홍단심계의 홑꽃으로 하자는데 잠정결론을 짓고 즉, 배달 계는 꽃잎과 꽃 중심이 모두순백인 그룹이고, 아사달 계는 백색 꽃잎과 꽃잎에 일부 적색무늬가 있으며 꽃 중심에 부채 살 같은 적색 화심이 들어 있는 그룹에 속한다.
우리의 조국이 광복된 후에는 입법, 사법, 행정 3부의 표상으로 무궁화가 사용되었고, 국기의 봉도 무궁화 꽃 형태로 제정함으로써 명실 공히 무궁화는 ‘나라꽃 겨레 꽃’으로 자리를 굳혔다. 꽃말은 ‘일편단심 섬세한 아름다움’이다. 무궁화 연구회는 22품종에서 11개 품종으로 재선정 일반에게 널리 알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