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하천 탈을 쓴 위천천 막개발 계획을 철회하라!
작성일: 2011-07-28
< 거창 위천 생태하천 조성사업에 대한 성명서 >
거창군이 추진하고 있는 '거창 위천 생태하천 조성사업'은 지난해 12월 열린 1차 설계자문위원회에서 당초 계획안에 대해 상당한 문제제기와 수정요구가 빗발쳤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위천천의 인공성을 강화하고, 생태계를 파괴하고, 하천경관을 획일화시키는 개악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이번 계획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사항이 가동보 설치인데, 가동보 설치는 단지 물을 가두어 두는 것 이외에는 어떤 타당성도 없고, 주민들이 얻을 수 있는 편익(benefit)도 없다. 기존의 보만으로도 갈수기에는 보 상류 쪽에 오염물질이 침전되어 수질이 악화되는 현상이 명확하다. 거창군도 갈수기에는 수질이 악화될 것이기 때문에 가동보를 눕혀서 물을 가두지 않겠다고 하는데, 정작 물이 필요한 갈수기에 물을 가둘 수 없는 가동보를 30억 원씩 들여서 설치할 이유가 없다. 또, 가동보 설치로 하상에 있는 식생대와 여울, 자갈밭이 물에 잠겨 없어지기 때문에 하천의 자정작용을 교란하고 균형을 무너뜨림으로서 수질악화를 자초하는 일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가동보가 오작동을 일으킬 경우 하천이 범람할 수 있고, 산지하천의 특성상 유지·보수비가 지나치게 많이 든다는 점이다. 이것은 1차 설계자문회의에서도 심각하게 지적되었으나, 거창군은 이를 무시하고 있다.
잔잔한 호수에서나 가능한 분수쇼를 위해 산지형 하천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칸칸이 가동보를 설치해 물을 막고, 대규모(분수대는 폭 4m, 길이 30m로 계획)의 분수대를 설치하겠다니 거창군의 퇴행적 상상력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홍수기에는 큰 바위도 굴러내려 오는 위천천의 특성상 하천 한가운데 이런 시설물 설치해 놓고 온전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 큰비가 내릴 때마다 훼손될 것이고, 결국 유지·보수를 위해 주민들의 세금을 강물에 뿌리는 셈이다. 더구나 거창읍에는 이미 5개의 분수가 설치되어 있으나 대부분 가동율이 저조해 예산낭비 사례로 지목되고 있다. 그런데도 하천 바닥에 위험을 무릅쓰고 또 분수를 설치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위천천은 경남의 주요 수달(천연기념물 33호)서식지 중 하나이다. 이곳의 수달은 합천댐으로 인해 절멸의 위기를 겨우 넘겨 살아남은 거창 하천생태계의 지표종이라고 할 수 있다. 수달은 먹이사냥은 물에서 하지만 먹이를 먹고, 휴식을 취하고 천적으로부터의 은폐를 위해 반드시 하상의 바위와 자갈, 수풀이 필요하다. 그런데 가동보를 설치해서 물을 가둔다면 수달의 서식에 필수적인 하상지형이 대부분 물속에 잠기게 되어 수달은 서식지를 잃게 된다.
홍수를 막고 토지를 확보하기 위해 뒷일 내다보지 않고 하천을 직강화하고 둑을 쌓아 강의 품을 좁히는 하천정비가 이뤄졌다. 그 결과 위천천은 경관부터 판에 박힌 몰개성의 획일적인 하천이 되었고, 하천생태계는 절멸했다. 본래 이 하천이 가지고 있는 종다양성이 초토화 되었다는 뜻이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하천의 생태적 기능에 눈떠 하천변 개발을 억제하고 수변 생태벨트를 조성하려는 계획이 여러 지자체에서 시도되었고, 대안적인 하천 관리방향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최근에는 어떤 하천사업에서도 생태적 고려를 하지 않고 과거처럼 무자비한 개발을 밀어붙이는 사례는 거의 없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거창군의 계획은 참으로 시대착오적이다. 거창에서 위천천에 거의 200억 가까운 예산을 투입해서 무엇인가 해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이번 계획은 87년 이후 24년 만에 하천정비기본계획 수립을 겸해 대규모 사업을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소중한 기회를 살려 위천천의 자연스런 경관과 생태적 다양성의 증진을 위한 보다 근본적인 처방에 나서지 않고 얄팍한 보여주기식 개발에 치중하는 양태는 공무원들의 무사안일한 보신주의라 비판받아 마땅하다. 거창교 상류 둔치에 물놀이장을 만든다는 계획에 대해서도 1차 심의회에서부터 지적되었지만 원안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아마 서울의 한강공원 물놀이장을 베껴온 것 같은데, 한강과 위천천의 사정은 영 다르다. 한강은 폭이 약1.1Km에 이르고 수심이 10~30m에 이른다. 반면 위천천은 도심구간 전체를 통틀어 수심 1m 넘는 곳은 터미널 앞쪽 사래비보 상류와 거열교 아래 도로 절개면 쪽이 전부다. 하천 전체가 자연스런 물놀이장이고, 아이들은 여름이면 위천천 어디서라도 물놀이를 즐기며 놀고 있다. 설계자문위원들이 현장을 방문해 지적했듯이 위천천 자체가 천혜의 자연 물놀이장이니 하천변 둔치에 일부러 물놀이장을 인공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인공 물놀이장이 강과 주민들을 분리시켜, 주민들의 접근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차라리 지금의 둔치를 감싸고 있는 콘크리트 덩어리를 걷어내고 자연스럽게 경사를 잡아 인공 시설물이 아닌 강 자체에 대한 주민들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또, 물놀이를 즐긴 후 시멘트 바닥이 아니라 모래톱과 자갈밭을 걸을 수 있게 해주고, 키 낮은 갯버들 숲이나마 강가에 푸른 그늘을 만들어 주는 것이 자연과 인간에게 두루 이로운 투자다.
위천천은 산지하천이다. 덕유산에서 흘러내린 급한 물길에 모래, 자갈, 큰 바위가 쌓이고 깎이고 부서지며 만들어진 하천이다. 거친 물살이 만든 모래사장과 자갈밭이 있고, 패어져 나간 소는 시퍼런 물길을 자랑하는 변화무쌍한 하상지형을 가지고 있어, 한강에도 없고 낙동강에도 없는 다양한 물고기와 곤충과 식물 그리고 철새들이 사는 곳이 위천천이다. 이 하천에 보를 막고 물을 가두어 강바닥의 그것들을 물속에 잠기게 하는 것은 위천천 그 자체를 수장시키는 것이다. 더 이상 위천천의 인공성을 강화하고 직강화를 고착시키는 행위를 군민의 이름으로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생태하천 조성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추진하고 있는 이번 계획은 추진 과정에 있어서도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지난해 12월 1차 자문회의에서 사업의 내용이 생태하천의 개념에 적합한지, 가동보의 안전성 문제와 유지보수를 위한 예산문제, 하천 분수와 둔치 터널분수의 효용성 문제 등이 지적되었지만 어느 것 하나 명확하게 해명하거나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가동보의 안전성과 효용성 때문에 설치여부를 신중히 결정해야 된다는 의견이 다수였음에도 거창군은 일방적으로 설치를 기정사실화하고, 6월에 가동보의 종류를 결정하는 형식적 심의회를 개최했다. 또, 지난 7월 4일 보도자료를 통해 대부분의 심의위원들이 물놀이장, 쉼터, 음악분수 설치에 대해 공감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현장을 방문한 심의위원들은 무분별한 인공 시설물을 설치하기보다는 현재의 콘크리트 블록을 걷어내고, 이 계획의 본래 취지에 맞게 자연형 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옳다고 지적했다. 참고로 이날 현장방문에는 군청에서는 달랑 담당자 1명만 참석했고, 심의위원들의 의견을 기록조차 하지 않았다.
이 계획을 담당하고 있는 재난안전관리과는 위험요소를 제거해 주민들의 안전을 책임져야할 부서인데 오히려 위천천을 위험한 환경에 빠뜨리고, 생태계를 교란하는 무책임한 막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거창군수는 취임 전부터 군수에 오른 지금까지 환경주의자임을 자처한 사람이다. 이번 계획을 문제점을 인정하고 명확하게 철회하지 않는다면 군수는 ‘그린워시’ 즉 녹색세탁을 일삼는 뻔뻔한 공직자로 기억될 것이며, 군민들의 준엄한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이 사업이 ‘거창위천 생태하천 조성’이라는 본래 취지를 살려서 위천천의 하천경관과 생태계가 회복되고 거창의 자랑거리가 되기를 기대하며, 위천천 막개발 계획의 철회를 위해 행동에 나설 것을 선언한다.
2011. 7. 28
거창군 농민회, 거창군 여성농민회, 거창YMCA, 민예총 거창지부, 적십자병원 노동조합, 전교조 거창지회, 푸른산내들, 함께하는거창, 희봉위생공사 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