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의 역사와 문화” 책자 발간
작성일: 2004-09-06
경북대 김종택교수·일왕가의 본향은 거창 가조이다? 주장
거창군(군수권한대행 김윤수)에서는 거창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학문적 접근방법을 통한 지난 1년간의 연구 첫 성과품으로『거창의 역사와 문화』를 발간하였다.
이번에 발간된 책자는 제1부에서 가조 우두산을 중심으로 한 지역 일대의 일본 천왕가와의 관련설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조명하였고, 제2부에서는 가야시대의 거창, 제3부에서는 부록으로 거창의 지명과 관련된 자료를 싣고 있다.
이번에 발간된 책자에서 주목되는 논문은 경북대학교 국어교육과 김종택 교수의「일왕가의 본향은 거창 가조이다」와 동 대학 주보돈 교수의「고대사회 거창의 향방」이다.
김종택 교수는 일본의 역사서『고사기』『일본서기』에 기록된 일본 천왕가의 조상신들이 살았던 소위 다까아마노하라(고천원)는 바로 거창의 가조이며 그 증거로서 마상리, 고만리들의 명칭을 우리나라의 고대어 지명풀이를 통하여 증명하였고, 고사기에 常世의 장닭들을 모아 울게 하였다고 기록된 천암옥호(天岩屋戶) 석굴이 있는 산은 닭뫼(비계산)이라 하였으며, 스사노오노미꼬도(素嗚尊)가 고천원에서 내려와 머물러 살았다는 우두산(曾尸茂梨)은 가북 우혜에 비정하였다.
뿐만 아니라 신유년 춘정월 경진에 천황이 즉위한가시하라(原)궁은 고대 한국어 벌궁이고, 천손이 상륙한笠沙의 岬과笠의 狹역시 곶으로서 거창 가조의 옛 지명 벌 혹은 벌(산골짜기 벌판이란 뜻)과 동일하므로 고대 가조에 살았던「가소가야」사람들이 신천지 일본으로 건너가 세운 궁이 곧 새로운 가시하라(벌)로 명명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지금도 가조에 전래되고 있는 가야산하 만수동 한양조씨 천년도읍지 지리도참설을 통하여 일왕가 조상신들이 살았던 궁궐터(궁배이)를 지금의 부산소류지에 비정하고 있다.
또한 주보돈 교수는 서부경남의 서로 이웃한 두 고을 거창, 진주에서 오랫동안 서로 주장해 왔던 거열(居烈, 居列), 거타(居)에 대하여 논증하면서 거열을 진주라 하는 것은 조선초기에 편찬된『고려사』지리지에서 비롯된 명백한 착각이며 결코 진주가 거열일 수 없다고 하였다.
거창은 본래부터 그 지명과 치소가 동일한 거열(居昌縣本新羅居烈郡(一名居)景德王改今名)이었으며, 진주는 본래 거창에 위치하였던 거열성 치소를 신라 신문왕때 진주로 옮겨 분치 청주(本居州 新羅神文王時 分置菁州)로 함에 따라 본래 지명이 아닌 치소로서의 거열(居列)이 된 것이라 하였다.
따라서 현재 진주에서 언급되고 있는 거열성의 위치문제는 진주가 아니라 거창의 서쪽 건흥산에 위치한 성이 본래 거열성이라고 해석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책자 제3부 김윤우의「거창과 진주의 고대연혁 고찰」에서도 상세하게 언급되고 있어 금번의 책자 발간으로 인하여 두 고을의 명칭에 관한 기왕의 오해가 말끔히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거창문화센터에서는 거창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대한 학문적 연구활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그 성과를 시리즈로 엮어 출간할 계획으로 있어 그동안 미흡하였던 지역사의 규명과 함께 거창의 정체성확립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