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사건 박산희생자 합동초혼(招魂)장례식

작성일: 2004-09-06

구천에 떠돌던 영혼이 53년만에 추모공원으로 안장

거창사건 가운데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박산골 희생자 유족(대표 신현정)들은 9월 6일 사회지도층인사, 각급기관단체장, 유족 등 3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517명의 합동초혼장례식을 치렀다. 유족들은 먼저 박산학살터에서 발인제를 지내고 상여를 이동하여 박산 합동묘역에서 노제를 지낸 후 위령탑에서 평토제를 지내고 마지막으로 위패봉안각에서 우제를 지냈다.
이로서 박산합동묘역에 남자 여자 묘로 안장되었던 희생자들은 월여산 아래 새롭게 단장한 추모공원내의 묘지에 각각 초혼장으로 안장이 되어 다소나마 맺힌 한을 풀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새로 마련된 추모공원은 특별법에 의하여 지난 2000년 10월 착공하여 금년 4월 준공되었으며 묘지 안장이 끝나면 개원을 할 계획으로 추진 중이다.
거창사건 중 박산골 학살은 1951년 2월 11일 발생하였으며 사건 이후 전시국회에서 폭로, 사건의 은폐 및 조작, 군사재판으로 이어졌으나 1961년에는 반국가단체라는 누명으로 유족회간부 17명이 투옥되는 등 갖은 탄압을 받았고 어린이 묘는 훼손되어 흔적만 남아있다.
거창사건 희생자 719명 중 517명으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발생시킨 거창사건의 대표적인 이 사건으로 국회 조사단에 의해 청연학살과 탄량학살이 밝혀지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