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개방 불안 추곡 수매 해도 남은건 빚 빚 빚 뿐
작성일: 2004-11-15
올들어 경남지역에서 첫 추곡수매가 시작된 지난 3일 합천군 적중면 상부리 적중농협. 오전부터 경운기와 1t트럭 화물칸에 잔뜩 쌓여진 쌀가마를 싣고 수매현장에 들어서기 위해 줄지어 서 있는 농민들의 얼굴엔 기쁨보다 수심으로 가득차 있다.
쌀 수입개방 현실에 부딪힌 농민들의 상황은 그렇다치고,예전에 비해 형편없이 떨어진 수매가로 생산비를 제하고 나면 인건비도 안남는다는 생각이 이들의 얼굴을 찌뿌리게 했다.
게다가 피땀흘려 수확했지만 장래 불안감이 중간상인과 미곡처리장의 쌀구매 욕구를 떨어트려 쌀을 내다 파는것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함양 수매장에서 만난 함양읍 백연리 김외식(48)씨는 ‘올 작황은 지난해에 비해서 나은 편이나,그동안 들인 공을 뒤로 하더라도 농약대와 탈곡비 등 생산비를 제하고 나면 수중에 들어올 돈은 쥐꼬리만도 못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농사를 계속 지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사면초가라는 옛말이 지금 농민들의 심정을 대변해 주고 있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합천농민회 소속 이모(50)씨는 ‘예전같으면 수매일은 마을축제나 다름 없었는데 지금은 짜증만 난다'면서 ‘한해 동안 피땀흘려 봐야 남는것은 ‘골병'과 ‘빚' 밖에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수매를 마친 농민들은 농협이 수매장 한켠에 마련한 막걸리를 한잔씩 쭉 들이키며 비참해져버린 농촌현실에 대해 목청을 높히며 잠시 시름을 달랬다.
한잔술에 취기가 돈 백발의 박상기(65)씨는 ‘우리동네 농꾼중에 우리가 제일 젊다며 이미 병들고 피폐해진 농촌현실을 강건너 불보듯 한다'며 강하게 정부를 성토했다.
함양·거창·산청지역 농민들도 쌀 수확을 거의 마쳤는데도 정부수매와 중간상인들의 구매량이 현격하게 줄어 집에 보관하기 어려워 농협미곡종합처리장에 매입을 호소하고 있다.
당장 생활비와 농협빚,자녀학자금 마련 등을 위해 수확한 쌀을 내다 팔아야 하는데 사정이 그렇지를 못해 처마밑에 쌓아놓고 농협이나 중간상인들의 매입을 무작정 기다려야할 형편이다.
중간상인 허모씨는 ‘수확철이 되면 민간미곡처리장과 중간상인들이 상당량을 매입했는데 올해는 쌀협상 결과를 관망하느라 매입을 미루고 있어 농민들이 더 어려움을 겪고있다'고 말했다.
이에 농협 관계자는 ‘농민들이 무작정 쌀을 실고 농협에 찾아와 수매를 요구하고 있으나 수매량의 한정으로 전량 수매해주지 못하는 점이 매우 안타깝다'며 ‘한때 웃돈까지 받았던 쌀이 왜 이처럼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는지 한심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 수매가는 특등 5만9천940원,1등 5만8천20원,2등 5만5천450원,3등 4만9천350원,잠정등외 3만9천890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4% 인하됐다.
한태수 기자
taesu8780@hanmail.net